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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국 주식/Insight

1,2차 오일쇼크 초간단 정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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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은 최근 역오일쇼크에 따른 투자포지션을 검토하던중 과거 오일쇼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.

 

아주 간단하게 3분이면 이해가 갈 수 있을 정도로 정리해볼 예정이다.

 

○ 오일쇼크: 오일가격이 많이 올랐다.

역오일쇼크: 오일가격이 내려서 좋긴한데 너무 내려서 쇼크다. 

 

 

1944년 금태환제(금환본위제) 시장 - 달러 기축통화 합의

 -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에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 우즈에서 44개국이 모여 연합국 통화 금융 회의에서 탄생

 - 금1온스=35달러 고정, 그외 다른 통화는 달러에 고정

 

1960년: 석유추출국기구(OPEC) 창설

 

1960년~1975년: 미국-베트남 전쟁 

 - 미국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남, 물가상승, 무분별한 달러 발행, 달러가치 하락

 

1971년 미국 닉슨대통령: 도저히 안되겠다. 금태환제(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주는 제도, 금1온스=35달러) 폐지

 - 가지고 있는 금보다 달러가 더 필요해져 도저히 교환시스템으로는 전쟁자금 충당 불가에 따른 조치

 - 기축통화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

 - 달러가치는 하락하는데 유가는 그대로라서 산유국들 불만이 한층 고조됨(원유 가격을 2배로 올려버림)

 

1973년~74년 4차 중동전쟁(아랍-이스라엘 전쟁) - 1차 오일쇼크

 - 이집트-이스라엘 전쟁 발발 /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 승리 

 - 이스라엘 및 서방국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산유6개국이 원유를 감산하여 유가 4배 폭등(두바이유 2.9->11.63달러)

 - 선진국들은 두자릿수 물가상승, 역성장, 스태그플래이션까지 겪게됨

 - 중동은 호황기를 누림

 

1974년 페트로 달러시스템 확립(석유를 달러로만 매입가능, 진정한 기축통화 굳히기)

 - 금태환제 폐지에 따라 기축통화 지위를 지키기 위해 미국-사우디 협정 체결 

  *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-사우디아라비아 협약 체결(군사적, 경제적 지원)

 

1979년 이란혁명(이슬람국가로 바뀌면서, 친미에서 반미국가로 탈바꿈) - 2차 오일쇼크

 - 석유생산 제한 및 석유수출 제한(당시 세계 석유 생산량 15% 담당)

 

1980년 이란-이라크 전쟁(두바이유 20달러 돌파)

 

1981년 사우디의 석유 무기화 천명(두바이유 39달러)

 

결과: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유가 상승이 약 10배에 달하게 되고 이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경제난을 초래

시사점: 전세계는 엄청난 경제충격을 받았지만 미국은 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진정한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됨(될놈될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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